이언적 선생과 독락당

보물 제413호로 지정된 독락당을 들어설 때 제일 먼저 양쪽보다 중앙이 높이 솟아 있는 솟을대문을 지나는데 양쪽의 공간은 가마를 보관해 두는 장소라고 합니다.
 대문 앞에 네모진 돌은 말에서 내릴 때 사용하는 하마대입니다. 독락당 현판은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산해 선생의 글씨이며 옥산정사 현판은 이황 선생의 친필입니다.
 독락당에서는 대청에 앉아 담장의 살창 사이로 계곡의 물을 바라볼 수 있는데, 바깥 경치를 집 안까지 끌어들인 선조의 지혜가 돋보입니다.
 또한 계정이라는 정자에 앉아서 계곡의 물을 바라볼 수 있는데 이를 관어대라 하고, 건너편 산기슭이 영귀대이며, 연못이 있었고 주위에 대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계정의 편액은 한석봉 선생, 양진암은 이황 선생이 썼다고 전해집니다. 뒤편에 있는 회재 선생 유물관은 2002년 5월에 기공식을 하여 2007년 10월 7일에 개관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유물관 안에는 회재 선생의 유품과 유물이 진열되어 있는데, 이 중 27종 130점이 2006년 9월 보물로 추가 지정되었습니다.유물관 마당 앞에 있는 조각자(일명 중국 주엽나무)는 회재 선생이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온 사람에게 선물로 받아서 직접 심은 나무로 수령이 약 450년 정도 되었습니다. 한국 내 희귀수종으로서 1962년에 천연기념물 제11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조선 성리학의 선구자 회재 이언적 선생(1491~1553)

회재 이언적 선생은 화담 서경덕과 한국적 성리학의 토대를 만든 대표적 학자입니다.
 이(里) 중시 철학의 출발점이 된 회재 선생의 학문은 회재와 퇴계의 앞 글자를 따서 '회퇴(晦退)학파'라고 불릴 정도로 퇴계 선생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그 결과 영남 사림들의 성리학 형성에 선구적이고 지대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황과 함께 문묘에 종사되었으며, 이들을 가리켜 ‘동방5현’이라고 부릅니다. 호 회재의 회는 주희의 호 회암(晦庵)에서 따온 것이니, 주희를 흠모한 정도를 알 만합니다.